-
#5-1. 그치만, 웃지 않았습니다.
이제 우리는 영화의 결론부까지 왔습니다. 바로 5번 공간입니다. 이 공간에서 기우와 기택의 생각이 어떻게 끝맺음되는지 살펴봅시다.
5번째 공간은 1번 공간과 데칼코마니 그림 상으로 대칭되는 공간이지요. 그 말처럼 모든 게 원래대로 돌아왔습니다. 다시 원래 살던 집 반지하로 돌아왔고, 기우는 다시 돈을 벌기 위해 피자시대 전단지 알바를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몇 가지 달라진 것들도 있습니다. 기우는 중요한 것과 중요하지 않은 것이 무엇인지 깨달았습니다.
“한 달 만에 병원에서 눈을 떴을 때 처음 보는 얼굴은 형사같이 안 생긴 형사와 의사같지 않은 의사였습니다.”
이들은 사회적으로 지위가 있어 많은 이들에게 촉망받는 직업입니다. 그러나 기우 눈에는 더 이상 그렇게 보이지 않는 듯합니다.
그래서 기우는 그저 웃습니다. 좋은 직업은 그에게 더 이상 중요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운 좋게 다들 집행유예 선고를 받았을 때도, 기정이 얼굴을 오랜만에 봤을 때도, 저는 계속 웃었습니다."
“그치만 지나간 뉴스를 볼 때는 웃지 않았습니다.”
그에게 있어서 진짜 관심거리는 뉴스에 나오는 사람, 기우의 아버지였습니다. 바로 지금 그가 중요하게 여기고 있는 것이지요.
"그러던 어느덧 형사들 미행도 뜸해질 무렵부터, 가끔씩 산에 올랐습니다.
그 산에 올라가면 그 집이 꽤 잘 내려다보이거든요."이제 기우는 예전처럼 그 집을 우러러 보지 않고, 내려다봅니다. 그리고 어쩌면 그렇게 보았기 때문에, 지하의 외침이 그에게 들렸을지도 모릅니다. 그의 아버지는 지하에 벙커에 있었습니다. 매일 밤 아들에게 모스부호를 통해 편지를 쓰고 있었던 것이지요.
#5-2. 박사장님 미안합니다.
"그때 대문을 나올 때 순간 깨달았다. 어디로 가야 하는지." - 기택 -
동기가 어떠했던 간에 기택은 사회적으로 힘과 재력을 갖춘 사람을 살해한 살인자였습니다. 앞으로 그는 박사장을 지키고 있을 무수한 CCTV와 형사들의 감시를 피해 살아갈 수 있을 리 만무합니다. 기택의 유일한 선택지는 지하 벙커 안에 숨는 것 그뿐이었습니다. 마치 근세가 사채업자들에게 쫓겨 지하 벙커로 숨어들어야 했던 것처럼 말입니다.
또한 그 지하 벙커는 얼마 전까지 계속해서 근세가 살던 곳이었지요. 기택이 근세를 대변해 박사장을 살해했던 것과도 이어져 기택이 저 아래 사람에게 동질감을 느끼던 이미지를 더욱 강화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 모든 사실들을 종합해볼 때 기택은 땅 밑에 사는 사람들을 대표하는 인물이라고 정리할 수 있겠습니다. 이 포인트를 잘 잡고 갑시다.
"박사장님 미안합니다."
또 여기 흥미로운 장면이 있습니다. 사람이 박사장에게 RESPECT! 하던 그 자리에 서서 박사장에게 사과를 하네요. 조금 의외입니다. 화가 머리끝까지 솟아올라 충동적으로 박사장을 칼로 찔러 죽였던 그가 이번에는 왜 박사장에게 미안하다고 말을 하고 있는 것일까요.
저 밑에 사람들을 경멸하는 게 너무나도 싫어서 저질렀던 우발적 범행, 그런데 그것은 적절한 해결책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새로운 피해자를 양산할 뿐이었습니다.
기택의 그 행동으로 인해 다시 박사장 가족은 기택 본인과 같은 경쟁의 피해자가 되었습니다. 바로 그 대목에서 기택은 박사장에게 사과와 용서를 구하고, 또 최종적인 화해를 이루고자 했던 게 아닐까, 감히 조금 과하게 해석을 해봤습니다.
진정한 문제의 해결책은 바로 경쟁과 싸움이 아니라 용서와 화해입니다.
#5-3. 기우의 편지: 저는 오늘 계획을 세웠습니다.
드디어 마지막 장면입니다. 정말 감동적인 장면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 모든 소식을 들은 기우는 바로 집으로 달려가 아버지께 편지를 씁니다. 그리고 꿈을 꿉니다. 편지와 꿈의 내용은 바로 이것입니다.
아버지, 저는 오늘 계획을 세웠습니다. 근본적인 계획입니다.
돈을 벌겠습니다. 아주 많이요.
대학, 취직, 결혼 다 좋지만, 일단 돈부터 벌겠습니다.
돈을 벌면, 이 집부터 사겠습니다.
이사 들어가는 날에는, 저랑 어머니는 정원에 있을게요. 햇살이 워낙 좋으니까요.
아버지께서는 그냥, 계단만 올라오시면 됩니다.
그 날이 올 때까지 건강하세요. 그럼 이만.
- 기우의 편지 -
편지는 이렇게 시작합니다.
"저는 오늘 계획을 세웠습니다. 근본적인 계획입니다."
다시 한 번 계획이라는 단어가 등장했습니다. 지금까지 계획이라는 단어가 각각의 공간에서 등장했던 것을 기억하시나요? 드디어 데칼코마니 그림이 제대로 빛을 볼 수 있는 시간입니다.
다시 기억을 떠올려볼 겸 1번 공간부터 다시 한 번 짚어봅시다.
[1] "너는 다 계획이 있구나!"
그들이 처음에 세웠던 계획은 어떻게든 강자의 위치로 올라가려는 계획입니다.
사진은 기우가 부잣집 과외를 하러 올라가는 장면입니다.
그런데 계획에 없던 일들이 발생하는가 싶더니 결국 그들의 계획은 수포로 돌아갔습니다.
[3] "최고의 계획은 사실 무계획이야. 무계획."
기우는 실패를 겪으며 다시금 고민에 빠집니다. 그러다가 내놓은 결론이 바로 5번 공간에서의 다짐입니다.
[5] "저는 오늘 계획을 세웠습니다.“
그리고 마치 데칼코마니처럼 똑같은 길 위에 다시 서있습니다.
이제 우리의 관심은 '그 계획이 무엇인지'에 모여 있습니다.
그리고 그 계획이란 바로 '돈을 버는 것'이라고 합니다. 대학 취직 결혼 그런 거 말고.
이런 단어들에서 기우의 과거 행적들이 엿보이네요. 대학(연세대학교), 취직(부잣집 딸 과외), 결혼(다혜), 이렇게.
그리고 언급한 그런 것들도 물론 좋지만, 일단 돈부터 벌겠다고 하는 것으로 보아 지금까지 세웠던 계획과는 다른 것임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 뒤로 돈을 벌겠다고 하는 이유가 나타납니다. 돈을 많이 벌어서 집을 사고, 지하 벙커에 사는 아버지를 꺼내드리는 것. 이것이 바로 기우의 계획입니다.
아버지 기택이 땅 밑에 사람들을 대표하는 인물이라는 점을 잘 기억하실 겁니다. 마찬가지로 기택이 현재 살고 있는 공간인 지하 벙커는 땅 밑의 공간입니다. 또한 이 집은 저 위 공간을 대표하는 장소이고요. 이 두 공간 사이에는 늘 선이 존재해, 두 공간은 서로 가까우면서도 결코 만날 수는 없는 그런 공간이었습니다. 특히 박사장은 이 선을 지키는 것을 매우 중요시했지요.
그리고 이 선 때문에, 저 위에 사는 사람들은 땅 밑에 사는 사람들의 삶이 어떤지, 얼마나 힘든지 마는지에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아래 사람들이 도움을 필요로 해 도움을 청할 때에도 그 소리는 윗 공간까지 닿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기우의 계획은 그런게 아니었습니다. 기우가 원했던 것은 바로 두 공간 사이의 경계가 사라지고 두 공간이 서로 만나는 것이었습니다.
기우는 선 위에서 가정부 가족을 박대하며 선을 지키면서도 살아봤고, 한편으로 선 아래에서 자신이 박대했던 사람들과 같은 처지가 되어서도 살아봤습니다. 기우의 계획은 선 위 아래에서의 경험 모두 겪어본 후에 내린 일종의 결론인 것이지요.
또 이렇게도 표현해보고 싶습니다. 4번 공간에서 모두가 피해자임이 드러나면서 공간이 무너지는 사건이 일어났다면, 5번 공간에서는 다시 두 공간이 재결합하는 사건이 일어난 것이지요.
물론 이 모든 일이 일어나는 곳은 기우의 꿈 속이며 계획안의 내용일 뿐입니다. 하지만 그 자체로도 이미 충분히 가치 있는 일입니다.
1번 공간에서 기우가 세웠던 계획은 자신과 자신의 가족들만을 위한 이기적인 계획이었습니다. 그러나 5번 공간에서 기우가 새롭게 새우는 계획은 사람 모두를 향한 이타적인 계획입니다. 이제까지 그저 돈을 벌기 위해 살았다면, 이제는 고통받았을 삶을 살던 사람들을 위해 그들과 함께 살기로 결심한 것이지요. 반지하에서부터 시작해 다시 반지하로 돌아오기까지 그의 가치관이 바뀌는 큰 경험을 한 것입니다.
그리고 계획이라는 단어의 의미를 잘 함축하는 소품이 있지요. 바로 수석입니다.
기우가 근본적인 계획을 세웠다는 대사와 함께 수석을 흐르는 시냇물에 내려놓는 장면이 등장하는데요. 여기서의 수석은 또 어떤 의미일까요.
맨 처음에 살펴봤던 대로 수석 그 자체의 의미는 재물운 합격운 등을 불러오는 복(福) 이었습니다. 그런데 수석 그 자체의 의미보다 누군가가 누구에게 수석을 건네주는 그 행위에 대한 의미가 더 중요해 보입니다.
1번 공간에서 민혁이가 기생충 가족에게 수석을 건네주지요. 연이어 기택의 "너는 다 계획이 있구나!" 대사와 함께 충숙이 수석을 열심히 닦는 장면이 나오는데요. 그리고는 수석을 집 한가운데 고이 모셔두지요. 이렇게 등장한 수석의 운은 기생충 가족을 위한 운이었습니다. 마찬가지로 계획 또한 그들 스스로를 위한 계획이었고요.
3번 공간에서 기택이 "최고의 계획은 무계획이다." 라고 말할 때 기우는 수석을 끌어안고 깊은 고민에 빠져있었습니다. 앞으로 어떤 목표와 계획을 갖고 살아야 하나에 대한 고민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고민은 4번 공간에서 기택이 수석을 근세에게 주러 찾아가는 행동으로 이어지지요. 지금까지 자기가 누렸던 운을 근세도 지하 벙커 사람들도 동일하게 누렸으면 하는 바램이었을 것입니다.
4번 공간과 5번 공간은 데칼코마니 그림 상에서 하나의 날개를 이루고 있습니다. 이 흐름 속에서 5번 공간에서 수석을 시냇물 속에 내려놓는 행위의 의미를 생각해보면 이렇지 않을까 싶습니다.
시냇물은 점점 아래로 흘러내려 바다를 향해, 나아가 세상을 향해 나아갑니다. 이런 특성을 생각해보면 수석을 시냇물 속에 내려놓는 행위는 이제는 운이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을 위해 사용됐으면 좋겠다는 바람과 함께 기우의 새 계획 : 저 위 공간을 바라보지 말고 저 땅 아래 공간의 사람들을 위해 그들과 함께 살겠다는 그 계획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돌은 사람을 살리기도 하며, 사람을 죽이기도 합니다. 1번 공간과 5번 공간 사이에서 수석의 의미는 그렇게 달라집니다.
"햇살이 워낙 좋으니까요"
지하 더 깊은 곳에 누군가가 SOS를 보낼 때에조차도 아랑곳하지 않고 가든파티를 즐기는 사람들을 비췄던 그 햇살 말고, 지상 위로 올라오는 땅 밑에 살던 사람들을 반겨주는 바로 그 햇살.
"그 날이 올 때까지 건강하세요. 그럼 이만."
그리고 이 모든 게 이뤄지는 장소는 바로 여기, 반지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