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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나 잘 어울려?
왼쪽은 4번 공간, 오른쪽은 2번 공간입니다. 앞으로 이렇게 데칼코마니 되는 상황을 자주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앞서 다혜는 '부잣집에서의 삶' 을 의미한다고 했었던 것을 잘 기억해봅시다. 그런데 4번 공간에서의 기우에게는 그때 저 위 세상에서의 새로움을 만끽하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마음 한 구석에 뭔가 부족함을 느끼고 있는 듯 보입니다.
"오빠 딴 생각 했지. 좀 전에 나랑 뽀뽀할 때 딴 생각 했잖아." - 다혜 -
다혜가 이렇게 보채는데도 기우는 들은 체 만 체 정원만 쳐다보고 있지요.
"야, 다들 멋있다 그지. 이렇게 금방 모였는데도, 다들 쿨하고. 되게 자연스럽네."
"다혜야, 나 잘 어울려? 잘 어울리냐구." - 기우 -기억이 나시나요? 네, 바로 이 대사입니다.
"기정아, 너 욕실에 있을 때 되게 잘 어울리더라" - 기우 -
2번 공간에서 부한 삶을 누리며 그들이 이곳에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던 것과는 대조적으로, 가든파티에 초대받은 사람들의 모습 속에 자신은 잘 어우러지지 못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파티에 초대받은 사람들은 모르지만 기우는 알고 있는 그 사실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다혜의 마음을 빼앗고 있던 기우의 한구석에 아려있는 그 생각은 무엇이었을까요.
#4-2. 저 사람들이 아니라, 더 밑에.
"왜 어디가?“ - 다혜 -
“밑에 가야돼.” - 기우 -
“저 썰렁한 사람들하고 뭐하게.” - 다혜 -
“저 사람들이 아니라, 더 밑에." - 기우 -그것은 바로 '저 밑에 사람들' 이었습니다. 밤새 고민하며 껴안고 있던 수석을 함께 들고 있네요. 기우는 수석을 들고 저 밑에 지하 벙커 사람들에게 찾아갑니다.
바로 여기서 기우가 수석에서 모종의 책임감을 느낀 이유가 나타납니다.
'저 위에 사는 민혁이가 땅 밑에 사는 기생충 가족을 찾아와 수석을 건네준 일'을 본받아, 자신 또한도 어떻게 보면 자신보다 더 낮은 공간에서 사는 사람에게 찾아가 수석을 건네주고, 기생충 가족에게 복을 불러왔던 그 수석의 의미에 대해 설명하려 했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 사람들에게 용서를 구하고 그 사람들과의 최종적인 화해를 이루기 위해 수석을 들고 내려갔던 것이지요.
안타깝게도 이러한 의도를 모르는 근세는 수석으로 기우를 돌로 내리치고, 자신의 아내를 죽인 기생충 가족에게 복수하러 지상으로 올라갑니다.
여기서 수석의 또 다른 의미를 알 수 있습니다. 돌은 사람을 죽이기도 하고, 사람을 살리기도 합니다.
#4-3. 비 안 왔으면 어쩔 뻔 했냐구요.
영화에서는 영화의 주제를 여러 캐릭터를 통해 다양한 관점에서 물색합니다. 3번 공간에서 살펴본 내용을 바탕으로 생각해보면 기우는 생각하고 사색하는 캐릭터라면, 기택은 좌절하고 체념하는 캐릭터인 것 같습니다. 이번엔 기택의 시선으로 초점을 맞춰봅시다.
연교는 파티를 준비하느라 분주한 상황이고, 기택은 운전기사로 연교를 따라다니며 시중을 들고 있네요. 갑작스럽게 준비된 이 파티는 애기 다솜이의 트라우마 극복을 위한 행사입니다. 엄마 연교는 이 파티를 위해 많은 것들을 계획하고 준비하지요.
"오늘 하늘 파랗고 미세먼지 제로잖어. 어제 비가 왕창 온 덕분에.
그 덕에 캠핑 나가리, 가든파티 콜.“
“비 안 왔으면 어쩔 뻔 했냐구요." - 연교 -이 대사를 들었을 때 기택의 머릿속에 스치는 장면이 하나 있었을 것입니다.
"나름 운치가 있네. 밖에는 비가 쫙, 우리는 위스키를 쫙"
2번 공간의 비가 오는 경치를 즐기는 기택의 모습과 4번 공간의 비가 와서 오히려 전화위복이라며 기뻐하는 연교의 모습은 서로 오버랩 됩니다. 데칼코마니상의 같은 위치에 있는 사건이네요.
그러나 이 이야기를 듣는 기택의 속마음은 결코 편하지만은 않습니다. 바로 3번 공간에서의 경험 때문입니다.
첫 번째, 그는 누구에게는 단순한 노름거리 정도로 여겨지는 것들이 누구에게는 삶의 터전을 빼았은 재앙이었다는 사실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로, 그 누구는 바로 우리들과 같은 사람들이었습니다. 작은 세상에 사는 사람들에게 어느 정도 동질감을 기택에게는 비가 안 왔으면 어쩔 뻔 했냐는 연교의 말에 결코 마음이 편할 리 없었습니다. 특히 기택을 연기한 송강호의 표정 연기는 정말로 진국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4-4. 그거 있잖아. 지하철에서 나는 냄새
그런데 하필이면 그 와중에 냄새가 또 선을 넘습니다. 기택과 기택의 가족에게는 냄새가 있는데요. 반지하 고유의 냄새이지요.
여태껏 기택은 자신을 박사장 가족의 운전기사로 pretend, 흉내내며 자신의 정체를 숨겨왔으나, 이 냄새 때문에 자신의 원래 신분을 들킬 뻔한 상황이 여럿 연출되기도 합니다. 그런 냄새까지 없애고 자신을 완전한 두 번째 공간의 사람으로 위장시키려 하지만, 세 번째 공간에서 산전수전을 겪었던 그는 지금 네 번째 공간에서 아마도 체념을 한 상태인 것 같습니다.
연교는 기택에게서 나는 냄새를 맡고는 코를 찡그립니다. 누군가가 자신을 보고 찡그리는 것은 상당히 불쾌한 일입니다. 그런데 기택이 이런 눈총을 받은 일은 한 번이 아니지요.
“어디서 김기사 냄새 나는 것 같지 않아? 낡은 무말랭이 냄새 같은 게.” - 동익 -
“노인냄새?” - 연교 -
“아니. 가끔씩 지하철 타면 나는 냄새 있어” - 동익 -기택과 기생충 가족이 식탁 아래에 숨어있을 때, 소파에서 박사장과 아내 연교가 서로 나눈 대화입니다. 정말 불쾌한 이야기를 하는데도, 자신의 정체를 들키면 안 되는 기택은 힘을 쓸 수가 없고 그저 잠자코 듣고만 있어야 하네요. 특히 그 냄새가 '지하철에서 나는 냄새' 라는 말은 단순히 기택에게만 하는 말이 아닌 것처럼 들립니다.
그런데 연교가 기택에게 지었던 그 표정을, 이번에는 박사장이 짓습니다.
#4-5.
지하 벙커 사람 근세는 기우를 돌로 쳐 기절시킨 이후 벙커에서 집으로 올라와 부엌에서 칼을 챙긴 후, 파티가 열리고 있는 정원으로 나가 그대로 돌진해 기정을 부엌칼로 찔렀습니다. 순식간에 파티는 아수라장이 되었습니다. 두 눈 뜨고는 쉽게 보기 힘들어 저도 눈을 가리는 흉내를 내며 그 장면을 봤던 기억이 나네요.
영화는 반지하의 찝찝한 모습으로부터 시작해 거실에서 두 가족이 서로 싸우는 장면, 그리고 지금 이곳에서 세 가족이 서로 얽키고섥킨 장면으로 이어지며 끊임없이 우리 마음을 찝찝하고 불편하게 합니다.
파티장에 난입해 난동을 부리던 근세를 충숙이 바베큐 칼로 찌르며 위급했던 상황은 마무리 되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상황에서도, 어떻게 보면 자신의 집에서 일어난 큰 사건이었기 때문에 상황을 수습해야 할 책임이 박사장에게 있었음에도, 그는 그저 선을 지키는 데에만 여념이 없었습니다. 누가 죽는지 다쳤는지 따위에는 전혀 신경을 쓰지 않았습니다. 박사장은 그저 자신과 자신의 가족들이 안전하게 피신하게 위해 자동차 열쇠를 찾을 뿐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선은 마냥 그렇게 지킨다고 지켜지는 건 아닌가봅니다. 쓰러져있는 사람의 몸을 뒤집어 열쇠를 꺼내려 할 때, 다시 냄새는 선을 넘습니다.
사람에게서 역한 지하 벙커 냄새를 맡는 순간 박사장의 얼굴은 다시 찌푸려집니다.
그리고 그 표정을 지켜본 기택은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돌발행동을 합니다. 모두가 그 행동에 놀랐습니다. 기택은 기정을 찔렀던 그 칼을 들고 일어나 등을 보이며 걸어가던 박사장을 돌려세워 그대로 칼로 찔러 그를 죽였습니다. 영화 제목처럼, 기택은 숙주인 박사장네 집에 기생하다가 숙주를 빠져나오며 기생충처럼 숙주(박사장)를 파괴시켰습니다.
식탁 밑에 숨어 박사장의 뒷담을 들을 때, 그리고 연교가 자신의 냄새를 맡고 찡그릴 때에조차도 아무 대꾸도 하지 못하고 화를 꾹 참고 있었던 기택이, 이번에는 자신 말고 다른 사람을 경멸하는 그 시선에 반응해 분노를 터뜨린 것입니다.
상식적으로는 칼이 있다면 자신의 딸 기정이를 살해했던 사람을 확인사살 한다거나 하는 게 이치에 맞습니다. 그런데 난데없이 그 사람이 아닌 그 사람을 보고 눈살을 찌푸린 박사장을 찔러 죽인 것은 더욱 아이러니 입니다.
그것은 기택이 땅 밑에 사람 근세에게 동질감을 느끼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는 같은 가지지 못한 자의 공간에 속한 사람으로서, 같은 경쟁의 피해자로서의 동질감입니다.
그리고 바로 여기서도 데칼코마니의 흔적을 찾을 수 있습니다. 기생충 가족과 지하 벙커 가족간의 싸움이 4번째 공간인 이 곳에서도 있었고, 동일한 가족간의 “싸움이 2번째 공간에서도 있었습니다. 2번째 공간에서 기택은 지하벙커 사람들을 하대하고 꽁꽁 묶어 놓았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오히려 지하 벙커 사람을 놔두고 대신 그를 경멸하던 박사장을 찔러 죽인 것입니다.
우리는 종종 다음과 같은 철학적 질문에 마주합니다. 우리는 누구인가?(WHO AM I?) 그리고 이 질문에 기택은 이렇게 답했습니다. 저 위 세상에 어울리는 사람이 아니라, 땅 밑에 사는 사람이라고.
이 질문을 동일하게 스스로에게 던져봅시다. 우리들은 모두 기생충 가족처럼 목표를 향해 살아갑니다. 때로는 목표를 이루기도, 때로는 일이 계획대로 안 되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일궈낸 것에 만족하며 놀기도 하며, 혹은 목표와 상관없이 그저 세월이 가는 줄 모르게 놀기도 합니다.
그런데 세상은 그냥 그저 그렇게 살아가는 거라고 답하고 넘어가기에는 뭔가 어설퍼 보입니다. 그리고 특히 이 세상의 비극을 마주할 때, 그리고 남의 경험이 자신의 경험처럼 느껴질 때, 생각은 바뀌기 시작합니다.
#4-6. 경쟁의 참상
정말 충격적이고 큰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이제까지 기택의 입장에서 기택이 박사장을 죽인 사건이 어떤 의미인지에 대해 다뤘다면, 이번에는 박사장의 죽음이 박사장 가족에게는 어떤 의미를 갖는지를 살펴보려 합니다.
먼저, 일이 계획대로 안 되는 건 그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파티가 일순간에 아수라장이 되고 아버지가 죽을 줄 그 누가 알았을까요. 엄마 연교는 아들 다솜이의 트라우마를 극복하기 위해 세부 디테일까지 신경을 쓰며 철저하게 준비하고 계획했습니다.
"제시카 선생님이 케잌을 들고 나타날 때 우리(박동익, 김기택)가 제시카쌤을 습격, 그때 정의의 인디언 다솜이가 와!!..“
그러나 트라우마는 더 큰 트라우마를 남겼습니다. 어릴 적 환영으로 보았던 귀신이 실제로 눈앞에 나타났고, 그 귀신은 다솜이의 심리치료사 제시카 선생님을 찔러 죽였으며, 저번에 다솜이가 경기를 일으키며 죽을 뻔했던 것과 달리 이번에는 소동 끝에 정말로 다솜이 아버지가 죽었습니다. 엄마 연교의 계획은 처절한 상처를 남긴 채 철저하게 실패했습니다.
다음으로, 그들도 가진 자의 공간에 완전히 어울리는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어쩌면 그들 또한 그 공간에 잘 어울리는 사람인 것처럼 Pretend 하는 걸지도 모르겠습니다.
다혜가 다솜이 사실 천재적인 척하는 거라고 고자질하는 모습, 사람들은 다혜를 반듯하게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던 모습, 연교가 어설프게 영어를 섞어서 쓰는 모습들을 보면요. 그리고 평소에는 그렇게 깨끗한 척 거룩한 척 했지만(윤기사 사건) 그들도 결국 욕망 앞에서는 어쩔 수 없었지요.
마지막으로, 기생충 가족이나 지하 벙커 가족이나 박사장 가족이나 모두 똑같은 경쟁의 피해자였습니다.
올해의 기술인 타이틀을 달고 온갖 사업을 주도해온 능력자 남편 박동익과는 달리 음식이니 집안일이니 할 줄 아는게 없었던 아내 연교가 남편 없이 홀로 자녀들을 잘 키울 수 있었을지 그 결과는 불 보듯 뻔합니다. 누구나 우러러보던 그들조차도 이제는 앞으로 살 길이 막막한 존재가 되었습니다.
다시 말해, 그들도 다름없는 '사람' 이었습니다. 기생충 가족이나 지하 벙커 가족과 다름없는 사람 말입니다.
이리하여 네 번째 공간에서 공간의 붕괴가 일어납니다. 3번째 공간에서 저 아래 공간에 사는 사람들에게 닥쳤던 비극이 4번째 공간에서 저 위에 사람들에게까지 덮쳤습니다. 끝없는 경쟁의 결과로 영화에 등장한 세 가족 각각 사람 한 명씩 모두가 죽은 것이지요.
앞서 경쟁의 몇 가지 함정에 관해 살펴보았던 것을 잘 기억해봅시다. 먼저는 경쟁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늘 불안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상술했듯 불안은 위기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또한 경쟁은 의도치 않은 피해자를 양산합니다. 경쟁에서는 누군가는 반드시 도태되어야 합니다. 이렇듯 눈부신 현대 자본주의의 산물 이면에는 위와 같은 경쟁의 참상이 존재합니다. 마지막 이 장면은 경쟁의 끔찍한 참상을 단면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지요.
이 문제들은 단순히 영화 속 문제가 아니고 바로 우리 현실의 문제입니다. 바로 그 점에서 영화를 보는 내내 찝찝함이 가시지 않을 수밖에 없었던 게 아닐까 싶습니다. 그렇다면 이 경쟁의 참상 앞에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것이 바로 영화가 우리에게 던지는 심오한 질문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사색과 잘 어울리는 캐릭터가 있지요. 바로 기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