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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첫 번째 단서: 데칼코마니
영화를 정확하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영화 전체를 구성하는 틀을 중심으로 해석하는 게 정말 중요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지엽적인 해석에 갇혀 잘못된 길로 빠질 수 있습니다. 하나 예를 들어보자면, 영화의 주제를 빈부격차 또는 부자와 빈자의 대결구도 등으로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많은 영화 리뷰들이 그렇게 말하고 있기도 하고요. 그러나 이것은 전체를 보지 못하고 부분만을 보고 해석했기 때문에 나타나는 잘못입니다. 실제로 영화 전체를 놓고 보면 부자와 가난한자가 싸우는 장면보다 가난한 자들끼리 싸우는 장면이 더 많이 나오지요. 물론 빈부격차가 영화의 소재로 등장하기는 합니다. 다만 그것을 주제라고 한다면 이는 기생충 영화의 핵심을 온전히 담아내지 못했다고 봅니다.
이 영화의 제목은 기생충입니다. 물론 이 제목도 정말 많은 의미를 함축하고 있지만, 이보다 더 눈여겨봤으면 하는 것은 바로 영화의 가제입니다. 가제란 태명처럼 영화에 공식적인 이름을 붙이기 전 임시로 만들어놓은 이름을 말하지요.
이 영화의 가제는 데칼코마니입니다. 초등학교 다닐 적에 나비의 한쪽 부분에 물감을 열심히 칠하고, 종이를 반으로 접었다 펴면 완성된 나비 그림이 나타나는 것을 해본 적들이 있으실 겁니다. 이걸 두고 데칼코마니 기법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이런 그림을 한 번 준비해봤습니다. 이 그림이 바로 기생충을 이해하는데 정말 요긴하게 쓰이는 틀입니다. 틀을 구성하는 세 가지 단서가 있는데요. 첫 번째 단서가 바로 데칼코마니입니다.
데칼코마니 그림은 좌우 대칭이지요. 영화 속의 구성을 살펴보면 1번 공간의 내용과 5번 공간의 내용이, 2번 공간의 내용과 4번 공간의 내용이 각각 대응됩니다. 그리고 그 한가운데 3번 공간이 존재합니다. 가장 핵심적인 내용이 3번 공간에 있을 거라고 추측할 수 있겠습니다. 여기까지만 해놓고, 다음 힌트로 갑시다.
#1-2. 두 번째 단서: 공간
두 번째 단서는 바로 공간입니다. 영화 속에는 설정된 두 개의 공간이 존재합니다. 저는 이렇게 이름을 붙여봤습니다.
사실 영화에서 직접적으로 이들을 가리키는 용어가 등장하지는 않아서 뭐라고 불러도 상관없긴 합니다. 이 글에서는 ‘가지지 못한 자의 공간’ 대 ‘가진 자의 공간’, ‘땅 밑에 사는 사람들’ 대 ‘저 위에 사는 사람들’ 표현을 사용하려고 합니다.
데칼코마니 그림의 아랫부분은 가지지 못한 자의 공간을 의미하고, 윗부분은 가진 자의 공간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영화는 공간의 이동에 따라 전개됩니다. 1번 공간에서부터 시작해 234번 공간을 거쳐 5번 공간에 도착하는 방식이지요. 그러니까 영화의 주인공 가족은 가진 자의 공간과 가지지 못한 자의 공간을 계속해서 이동하게 됩니다. 따라서 이전에 좌우 대칭에 주목하자고 했던 것처럼 상하 대칭에도 신경을 써 주도록 합시다.
#1-3. 가지지 못한 자의 공간
공간에 대해 조금 더 구체적으로 살펴볼까요. 먼저 가지지 못한 자의 공간은 판자촌으로 된 빈민가입니다. 그리고 젤 끝에 반지하가 있고, 그곳에는 기생충 가족이 살고 있습니다.
이곳은 뭔가 찝찝함을 남기는 그런 공간입니다. 집 안에서는 꼽등이가 종종 발견이 되고, 집 밖에는 취객이 노상방뇨를 하며 돌아다니는 모습도 보입니다.
특히 이 공간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바로 '냄새'입니다. 실제 촬영장 세트를 제작할 때 냄새까지도 구현을 했다고 하는데요. 빈민가의 길거리와 반지하에 짙게 베긴 냄새 때문에, 그곳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소위 반지하 냄새가 납니다. 냄새는 빈민가 공간에 산다는 그들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특징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주요 인물 이름은 간단하게 익히고 갑시다.
한 마디로 요약하면, 가지지 못한 자의 공간이 의미하는 것은, '그 누구도 부러워하지 않는 삶' 입니다.
#1-4. 가진 자들의 공간
가진 자들의 공간의 상황은 정반대입니다. 수목이 심겨져 있는 아담한 정원, 이 위를 비추는 따뜻한 햇살, 남궁현자 선생의 예술 혼이 스며있는 집. 이곳에는 박사장 가족이 살고 있습니다.
특히 박사장은 선을 지키는 것을 매우 중요시합니다. 박사장에게는 주변 사람들이 선을 넘지만 않는다면 뭐든 괜찮습니다. 대신에 선을 넘는 것을 정말 '극혐'합니다. 이 선을 넘는다는 표현이 어떤 의미인지 잘 와 닿지 않을 수 있겠습니다. 그래서 몇 가지 예시를 준비해 왔습니다.
요즘 남이 뭘 하던 다른 사람들한테 피해만 주지 않는다면 다 괜찮다거나, 남이 어떤 생각을 갖던 남에게 강요만 하지 않는다면 다 괜찮다는 식의 사고가 만연하게 퍼져 있는 것 같습니다. 선만 안 넘으면 된다는 것은 바로 이러한 생각들을 두고 말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개인주의에 뿌리를 두고 있는 생각이지요. 박사장이 바로 이런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이번에도 등장인물 이름을 간략하게 익히고 갑시다.
다른 이야기가 조금 길어졌습니다. 이번에도 공간 특징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가진 자의 공간이 의미하는 것은, '누구나 부러워하는 삶' 입니다.
#1-6. 다시 가지지 못한 자들
다시 아래 공간의 사람들에게로 돌아와 봅시다. 지금 우리는 그림에서 첫 번째 공간 위치에 있습니다. '누구도 부러워하지 않는 삶'에서 벗어나 '누구나 부러워하는 삶'을 맛보기 위한 마음은 정말이지 간절했을 겁니다. 말은 되게 거창하게 했지만, 이건 우리 이야기입니다. 좋은 대학, 좋은 직장에 취직, 좋은 집. 모두 우리가 꿈꿔왔던 것들이지요. 독자분들 중에서는 이것들 중 많은 것들을 누리고 계실수도 있겠고, 적은 것들을 누리는 측에 속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어이 김기택, 시방 계획이 뭐야?" - 충숙 -
그런데 기생충 가족은 이들 중 단 하나도 누리지 못했습니다. 우리는 종종 그런 사람들을 보고 노력이 부족했다고 말을 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과연 그들은 정말로 노력이 부족해서 이 반지하같은 삶에서 벗어나지 못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들은 누구보다도 도전을 많이 했던 사람들입니다.
어머니 충숙은 운동 선수입니다. 전국대회에서 은매달을 딴 선수이지요.
[사진]
기우는 수능을 군대 가기 전 두 번, 군대 갖다온 후 두 번 수능을 치고도 아직까지 대학에 입학하지 못한 오수생입니다. 요즘은 군대에 있으면서도 수능을 치르기 때문에 나이로는 7수네요. 또한 기정은 미대를 준비해야 하는데, 돈이 없어서 학원에 가질 못하고 있습니다.
결국 그들은 듣보잡 브랜드인 피자시대에서 알바나 하며 겨우 반지하에서 밥벌이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중에서 특히 눈여겨봐야 할 사람은 아버지 기택입니다. 기택의 경력은 정말이지 화려합니다. 대리기사 발렛에, 치킨집 망하고, 대리기사 뛰다가, 대만카스테라 가게까지 망한데다, 이 모든걸 무덤덤하게 말하는 모습을 보니 이제는 실패가 너무나도 익숙해진 수준에까지 이르렀나 싶습니다.
특히 마지막 대만대왕카스테라는 단순한 설정을 넘어서 보다 중요한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몇 년 전 우리나라에 대왕카스테라가 큰 인기몰이를 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너도나도 카스테라 장사에 뛰어들었지요. 영화 설정상으로 기택도 그 중 한명이었습니다.
그런데 한창 개업 붐이 있던 와중에 한 방송 프로그램에서 카스테라를 만드는데 몸에 나쁜 기름을 사용한다는 보도를 한 겁니다. 소문은 순식간에 퍼졌고 가게들은 줄줄이 문을 닫았습니다. 그런데 사실 그 기름은 식용유입니다. 반죽에 식용유가 들어간다고 해서 나쁘다고 볼 근거가 전혀 없는데도, 언론은 그저 자극적인 소재를 활용해 사람들의 이목을 끌기만 하면 된다는 자기만의 목적에 충실해 그냥 그렇게 보도를 해 버린 것이지요.
돈을 벌 기미를 보이기도 전에 쫄딱 망해버렸습니다. 그런데 언론은 이 사태에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았습니다. 피해는 고스란히 돈을 벌기 위해 장사를 시작했던 사람들에게 돌아갔습니다. 우리 사회의 부조리한 한 면을 바로 이 대왕카스테라가 나타내고 있는 것이지요.
우리 사회가 평등하고 뭐 그런거 다 필요 없고, 그저 노력한 만큼이라도 성취감을 느낄 수 있는 사회라면 정말 좋을 텐데, 안타깝게도 지금 우리 사회는 그렇지 않은 것 같습니다.
억울하지만 마치 그게 그저 당연한 듯 입을 굳게 닫고 살아갈 수밖에 없는 우리의 모습들이, 시간이 지나면 기택처럼 그런 일들에 무덤덤해지는 모습이 굉장히 서글프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물론 이대로 늙어간다면 영화가 재미없겠죠. 상황은 기우의 친구 민혁이를 만나며 역전되기 시작합니다.
#1-7. 세 번째 단서: 모티프
"특히 이 돌은 가정에 많은 재물 운과 합격 운을 몰고 오면서.." - 민혁 -
"민혁아, 이거 진짜 상징적인 거네!" - 기우 -[사진]
어느 날 민혁이가 기생충 가족의 집에 방문합니다. 그리고 기우에게 부잣집 딸 다혜의 과외를 맡기고 가지요. 이와 함께 수석도 건네줍니다.
수석에는 정말 다양한 의미가 엮여 있습니다. 그런데 이걸 지금 다 열거했다간 과부화가 올 것 같고, 일단은 민혁이가 말한 대로 수석은 복(福)을 상징한다고 합시다. 정말 그의 말처럼 민혁이에게 수석을 받은 이후부터 일이 술술 풀리기 시작합니다."너는 계획이 다 있구나!" - 기택 -
기생충 가족은 '계획'을 세우기 시작합니다. 가지지 못한 자의 공간 곧 누구도 부러워하지 않는 삶에서 벗어나 가진 자의 공간 즉 누구나 부러워하는 삶으로 가기 위한 계획이지요. 이른바 반지하 탈출 계획입니다.
그들은 부잣집에서 필요로 하는 각자의 직업으로 위장하여 그 직업인 척(Pretend) 행세를 합니다. 연세대학교 합격증 위조에 연기까지(제시카 외동딸 일리노이 시카고!) 아주 치밀하게 준비합니다. 그리고 하나둘씩 부잣집에서 기생하기 시작합니다. 영화에서 특히 이 장면을 정말 해학적으로 스릴 있게 잘 표현한 것 같습니다.
그림을 이해하기 위한 세 번째 힌트는 바로 키워드 입니다. 방금 잠깐 살펴본 몇 가지 키워드: 수석, 계획, pretend, 그리고 조금 더 전에 살펴본 키워드: 냄새, 선 따위의 키워드들은 그림 전체를 꿰뚫는 매우 중요한 단어입니다.
데칼코마니, 공간, 키워드. 이렇게 세 가지 단서를 다 챙겼다면 이제 영화를 해부할 모든 준비가 끝났습니다. 그럼 이제 가시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