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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생충 영화 해설 2020. 3. 6. 17:08

     

    #3-1. 데칼코마니 한가운데

     

     

     그들을 맞이하고 있는 건 폭우였습니다. 넓은 거실에서 소위 발뻗잠 하며 훤한 유리창 밖 비 내리는 경치를 즐기며 "밖에는 비가 쫙, 우리는 위스키를 쫙" 하던 모습을 기억하시나요. 이제는 정 반대의 처지가 되어버린 겁니다. 그 전까지는 예쁜 경치 그 정도였는데, 그 비가 실제로는 폭우가 되어 자연재해 수준으로 내리고 있던 것이었습니다.

     

     

     그들이 다시 그들의 삶의 터전으로 내려가 확인한 실상은 그야말로 충격이었습니다. 온 동네가 비에 잠겼고, 특히 반지하였던 기생충 가족의 집은 완전히 침수되었습니다. 그 비는 기생충 가족과 이웃들의 삶의 터전을 망가뜨렸고, 그로인해 그들은 단체로 체육관에서 자게 됩니다.

     


     

    "최고의 계획은 무계획이야 무계획.
    왜냐, 계획을 하면 반드시 계획대로 안 되거든." - 기택 -

     

     

     지금까지 계획이란 단어가 어떤 뜻으로 쓰였는지 다시 한 번 복습해봅시다.

     

     첫 번째 공간에서 그들은 두 번째 공간으로 올라가기 위해 계획을 세웠고 또 해냈습니다. 그런데 전 가정부가 갑자기 방문한 일부터 캠핑장에 물이 불어나 박사장 가족이 집에 일찍 도착하게 되는 일까지, 계획에 없던 일이 연이어 벌어졌고, 결국 그들은 두 번째 공간에서 쫓겨나 세 번째 공간으로 이동합니다.

     

     야심차게 세웠던 그들의 계획은 또 다시 좌절되었습니다. 최고의 계획은 무계획이라는 기택의 말은 바로 이런 상실감에서 비롯된 말입니다.

    살펴보면 우리들 역시도 이렇게 계획을 세우고, 때로는 일이 계획대로 풀리지 않아 좌절하기도 합니다. 마치 이 영화의 기생충 가족처럼 말입니다.

     

     또 하나. 잠시 성공한줄 알았던 2번 공간에서 '여기도 사람 사는 공간이냐며, 당신은 계획도 없지 않냐'며 지하 벙커 사람을 비꽜던 모습이 생각납니다. 역설적이게도 사람 살 만한 , 계획이 없었던 사람은 기택 본인이었습니다. 애써 외면하려 했던 사실 하나, 그들은 같은 처지였던 것입니다.

     

     방금 전까지 난투극을 벌였던 두 가족이 실은 같은 공간에 사는 사람이라는 사실은 변기라는 매개체를 통해서도 나타납니다. 바로 이렇게.

     

     

     되게 찝찝하고 어떻게 보면 끔찍한 일이지만, 그들은 이 사실을 직시해야만 했습니다.

     

     가정부 가족과 기생충 가족은 모두 같은 경쟁의 피해자들입니다. 같은 경험을 공유했고, 같은 처지에 있었고, 무엇보다 같은 '사람'이었습니다.

     


    "이제 어떻게 할 거야? 지하에 사람들." - 기정 -

     

     그 사실을 조금씩 깨달아가는 중인지, 기생충 가족의 인식도 바뀌기 시작합니다. 우리만 신경 쓰면 되지 않느냐고 했던 그때와는 달라진 태도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3-2. 수석이 자꾸 날 따라와요.

     

     

     

    "아버지, 죄송해요. 뭐가 임마, 다요. 전부 다. 제가 책임질게요.“ - 기우 -
    뭔 소리야. 돌은 왜 그렇게 껴안고 있냐.” - 기택 -
    이거요? 얘가 자꾸 나한테 달라붙는 거에요. 진짜로. 얘가 자꾸 날 따라와요." - 기우 -

     

     

     큰 폭우가 휩쓸고 지나간 이후 고요한 밤. 한밤중의 감성 그윽한 체육관에서 기우는 어떤 생각에 잠겼을까요. 밤잠을 설쳤는지 퀭한 눈에 다크써클이 짙습니다. 그리고 그의 눈에는 눈물이 고여 있습니다.

     

     기생충 가족들은 쏟아지는 빗발에 잠긴 반지하에 들어가 각자에게 가장 소중한 물건을 하나씩 챙깁니다. 아버지 기택은 어머니 충숙의 상패를, 기정은 돈과 담배를 가져오는데요. 특히 저에게는 기정의 담배씬이 무척 인상 깊게 각인되어 남았습니다. 변기에서 쏟아지는 구정물이 역하게 느껴지면서도 담배씬의 매력이 그 장면을 직시할 수밖에 없도록 만들어 더욱 그런 게 아닐까 싶네요.

     

     그런데 난데없이 기우는 수석을 챙깁니다. 수석이 자꾸 나한테 달라붙는다는 표현은 더더욱 이상합니다. 대체 기우는 무슨 생각이었던 걸까요. 이 기우의 고민을 이해하기 위해 이번엔 기우의 시점으로 이야기의 첫 부분으로 돌아가서 스토리를 빠르게 훑어봅시다.

     


     

    "정신 차려 정신!" - 민혁 -
    "대학생이라 그런지 기세가 남다르네" - 충숙 -
    "오빠랑은 다르게" - 기정 -

     

     

     오줌싸개 하면 떠오르는 수식어는 하찮은 존재, 성가신 존재 그런 것들입니다. 반지하의 찝찝한 특징을 잘 나타내주는 사람이지요. 진상 짓도 이미 수차례인 듯한데 다시 반지하에서 기생충 가족이 술 마시는 도중에 오줌싸개가 찾아와 분위기를 깹니다.

     

     기생충 가족들이 어쩔 줄 몰라 하는 바로 그때 민혁이가 구세주처럼 등장해 박력 있게 그 대사 "정신 차려 정신" 을 외치며 오줌싸개를 내쫓지요. 그리고 기생충 가족은 민혁이의 그런 모습에 감탄을 내뿜습니다.

     

     민혁이는 기세등등한 대학생이나, 기우는 아직까지 대학교에 입학하지 못했습니다. 이런 점들을 짚어볼 때 기우를 땅 밑에 사람이라고 한다면, 번듯한 양복을 빼 입은 민혁이는 저 위에 사람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한편으로 또 기우에게 민혁은 마치 롤모델과 같은 존재입니다. 늘 민혁이를 따라하고 싶어 하지요. 마치 어릴 적부터 동경해온 형이나 삼촌 같은 이미지라고 하면 비유가 적절할까요.

     

     여기 소개된 장면들 외에도 기우가 민혁이를 Pretend 하는 장면은 여럿 있습니다. 관심 있으시다면 나중에 영화를 다시 한 번 보면서 찾아보시면 재밌을 거 같습니다.

     


     

    "정신 차려 정신" - 기우 -
    "~ 김기우 박력 있어!" - 기정 -

     

     

     반지하에서 술과 고기로 식구들이 전원 취업한 것을 만끽하는 와중에 느닷없이 또다시 오줌싸개가 찾아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예전과는 다르다는 듯, 기우는 박력 있게 죽일 듯 달려나가 '그 대사'를 외치며 오줌싸개를 쫓아냅니다. 이제는 나도 민혁이와 같은 저 위 공간의 사람이라는 자부심이 잔뜩 들어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것과 정말 꼭 닮은 장면이 하나 더 있습니다. 바로 3번 공간에서 비를 피해 집으로 돌아가는 상황인데, 입장이 뭔가 바뀐 것 같네요. 오히려 기택이랑 기우가 물보라를 맞고 있지요.

     

     그리고 이러한 설정은 지금까지 보았던 많은 장면들과 오버랩 됩니다.

     

     선은 선 위에 있는 자만이 그을 수 있습니다. 먼저 박사장은 기생충 가족에게 선을 그었습니다. 동일하게 기생충 가족은 반지하에서의 술 파티에 난데없이 등장한 취객(오줌싸개)에게 선을 그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계획을 방해받지 않기 위해 가정부 가족에게 선을 그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기생충 가족은 그들이 그었던 그 선 아래에 있습니다. 물에 젖은 기택과 기우의 모습은 그들에게 쫓기며 물보라를 맞은 취객의 모습과 다르지 않으며, 지금 기생충 가족의 처지는 지하 벙커 가족의 처지와 다르지 않습니다.

     

     이런 사실들을 하나둘 깨달아가는 기우의 머릿속은 굉장히 복잡합니다.

     


     

     

    "근데 아까부터 드는 생각이, 이 상황에서 민혁이라면 어떻게 했을까" - 기우 -

     

     그리고 바로 이게 지금 체육관에서 하고 있는 기우의 고민입니다. 앞서 민혁이는 기우의 롤모델이자 행동의 지표를 나타낸다고 말했습니다. , 기우는 앞으로 무엇을 위해, 또 어떻게 살아야 할까? 를 고민하고 있는 것입니다.

     

     기우의 생각은 지금까지 민혁이를 pretend 하며 살았던 부잣집에서의 기억보다 더 과거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계획을 세우고 또 계획이 좌절되기까지 이 모든 일의 발단은 기우가 운의 상징인 수석을 기생충 가족에게 선물해준 사건이었습니다. '저 위에 사는 민혁이가 땅 밑에 사는 기생충 가족을 찾아와 수석을 건네준 일'. 바로 이 사실 하나가 기우의 머리에 깊이 박혔을 겁니다.

     

     또한 수석을 안고 울먹이는 기우의 모습을 조금 더 들여다보면 이런 표현이 있습니다.

     

    "죄송해요. 전부 다. 제가 책임질게요."

     

     기우는 수석으로부터 원인모를 모종의 책임감을 느꼈던 것이지요.

    이제 질문의 관심은 한 군데로 모아졌습니다. 앞으로 기우는 어떻게 할까요.

     

     한편 부잣집에서는 물이 불어 취소된 캠핑 대신 생일번개를 준비합니다. 기생충 가족들도 각자의 직업인으로 이 파티에 초대되어 다시 4번 공간으로 이동합니다.

     

     4번 공간은 2번 공간과 데칼코마니 상으로 같은 위치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판자촌에서 인간의 실상을 보았기 때문에, 분명 뭔가 이전과는 달라졌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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